최근 동력을 잃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블로그 챌린지 모집 글을 보고 동력을 되찾기 위해 신청했다. 원래 주제는 2024년 회고지만, 창업 회고가 곁들여지면서 2023 하반기까지 포함되게 되었다.
창업 그리고 퇴사
올해 나에게 가장 큰 사건이지 않을까 싶다. 작년(2023년) 9월부터 쭉이라는 팀으로 창업을 시작했다. (이제는 회사가 되었지만)
종종 친구들이 왜 취업하지 않고 창업을 하냐고 물었다. (물론 취업이 하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원래 내 인생 계획은 2024년에 취업을 하고 30대 중반까지 돈과 경험을 쌓아 창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효재(쭉의 대표)를 만나면서 내가 10년 뒤로 계획했던 창업의 기회가 운 좋게 일찍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하더라도 미래에 창업하기 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효재에 대한 믿음이 컸다. 효재와 대화해보면, 꿈 같은 말들을 몇 년이 걸리든 결국 이뤄낼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fitapat(반려동물 커스텀 쇼핑몰)으로 시작했다. 유저가 AI의 도움을 받아 반려동물의 새로운 모습으로 커스텀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한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우리는 이것을 명왕성이라 불렀다) 모든 사람이 자기 브랜드가 있듯이 커스텀이 당연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커스텀 과정을 AI로 해결하고자 했다.


개인적으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고객들의 니즈가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러나 AI 기술의 한계로 수작업이 많이 들어가면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언젠가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서비스를 발전시켰지만,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올봄에서 여름 그사이 어딘가 당장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템을 시작했다. 우리가 커스텀 제품을 만들면서 얻은 노하우로 단체티, 웰컴키트 같은 커스텀 단체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점차 주문이 많아졌고 결국 우리의 메인 서비스였던 fitapat보다 매출이 높아졌다.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일시적인 아이템이 아닌 정식 서비스로 간주하고 브랜드부스트라고 명칭 했다. 점차 브랜드 부스트가 커졌고 리소스가 부족해졌다. 결국 fitapat을 그만두고 브랜드부스트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나에게만.
브랜드부스트는 웹 기반의 서비스였기에 앱이 필요 없었다. 지금껏 다양한 일을 해왔지만, 기본적으로 안드로이드 개발자였던 나는 새로운 주력 업무를 맡아야만 했다.
나는 제품을 만들어줄 공장들을 리스트업하고 방문하여 사장님들과 컨택하는 업무를 맡았다. 일례로 자수 부분을 개척하기 위해 자수 공장들을 돌며 자수 단가 책정의 원리와 사장님들의 페인 포인트를 조사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너스레를 떨며 대화하는 것은 나의 성향과 맞지 않았지만, 내 성격도 바꾸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이 일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는 아침 기상을 제외하면 즐거웠던 출근이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공장을 조사하는 동안 카톡방에서 친구들이 하는 개발 이야기를 보면 나만 도태되는 것 같아 두려웠다. 불안감과 함께 일을 부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한 나를 발견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개발자를 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안드로이드 개발이 아니어도 됐다. 어떤 개발이든 나는 개발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열정과 시간을 쏟았던 팀이고 어떻게든 성공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나와 팀을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올해 8월 26일이었다.
그 후로 쭉은 더욱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말 축하하고 앞으로도 잘 되길 바란다. 가끔 퇴사를 후회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나의 성취를 찾을 것이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내가 만든 제품으로 돈을 벌었고, 유저가 서비스를 좋아해주는 기쁨을 느꼈고, 투자를 유치하고 팀을 회사로 만들었다. 어디에서도 하기 어려운 경험이었고 앞으로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게 해주었다. 또 혹시 모른다. 언젠가 다른 경로로 팀과 다시 일하게 될지도?
쭉에서 기억에 남는 일들
동대문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어..
처음부터 모든 종류의 제품을 만들 수는 없었기에 옷으로 시작했다. 맨투맨과 후드티로 시작했고, 한 업체에게 공급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업체가 돌연 더 이상 해당 제품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린 당황하여 긴급회의를 열었고, 결과적으로 당일 밤 동대문을 돌며 조사하기로 했다.
자정을 넘긴 12시 30분에 동역사에서 만나 밤새 동대문 일대를 돌았다. 학생 취급을 받으며 문전박대당하기도 했지만 참 신선한 경험이었다. 모두가 잠드는 시간 동대문에서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동대문에서 직접 사입하는 것보다 새로운 업체를 찾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이 났다.
해당 에피소드는 아래에 더 상세히 적혀있다. 혹시 궁금하실까봐..
우당탕탕 스타트업 감성 모르면 나가라 | Disquiet*
라스베가스에서 CES2024로 인사드린 이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AI가 만드는 반려동물 굿즈, fitapat 운영하는 ZOOC 류희재입니다 :)fitapat은 내 반려동물로 굿즈를 디자인하는 경험에 AI를 접목해 만
disquiet.io
갑자기 멀티플랫폼
브랜드부스트가 생기 전에 회사의 재정이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열정 페이로 일하는 기간이 계속되고 매출이 좋지 못했다. 회사가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팀원이 떠나게 됐다. 네 명이었던 모바일 개발팀도 나 혼자가 되었다.
나는 iOS 개발을 해본 적이 없지만 둘 다 해내야 했다. 그래서 멀티플랫폼을 선택했고 플러터와 컴포즈 멀티플랫폼 (이하 CMP) 중 고민하다 CMP를 선택했다. 당시 팀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속도였기에 내가 가장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나는 플러터와 다트 모두 경험이 없었지만, 대신 플러터는 안정되고 레퍼런스가 많았다. 반면 CMP는 나에게 익숙한 코틀린을 사용하는 대신 불안정하고 레퍼런스도 거의 없었다. 당시엔 그래도 코틀린을 사용하는 게 낫겠다 싶어 CMP를 선택했다.
두 달 동안 기존 앱을 CMP로 마이그레이션 했다. 앱이 튼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기능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개발하면서 여러 번 후회했다. 지원되는 공식 API가 적어 오픈 소스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또한 불친절한 오류 메시지와 함께 수많은 오류가 발생했고 구글링하면 스택오버플로우 대신 유트랙이 나왔다. 그마저도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iOS와 컴포즈 모두 처음이었기 때문에 공부할 것도 많았다. 돌아보면 특히 내비게이션, 소셜 로그인, 웹뷰가 기억에 남는다.
내비게이션
컴포즈 내비게이션은 CMP에서 Back Handler 재정의, 딥링크 등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다. CMP 공식 문서에서도 서드 파티 라이브러리를 제안하는데, 유명한 것으로 네 가지가 있다. Voyager, Decompose, Precompose, Appyx가 있었다. (지금 들어가 보니 Circuit이 추가되었다)
나는 최대한 컴포즈 내비게이션과 비슷한 것을 사용하고 싶었다. 언젠가 컴포즈 냄비게이션이 발전하면 다시 넘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유사한 Precompose를 선택했다. 하지만 사용 중에 여러 오류를 겪으며 Voyager로 변경했다. Precompose에 비해 Voyager의 개발팀 인원이 더 많아서 그런지 더욱 안정됐다고 느꼈다. (대신 컴포즈 내비게이션과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내비게이션에서 특히 어려웠던 것은 iOS의 스와이프 백 제스처였다. 멀티 플랫폼이기에 플랫폼을 구분해서 뒤로가기를 다르게 구현해 줘야 했다. iOS 개발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이 부분이 꽤 곤란했다. 다행히 라이브러리 PR에 누군가 구현해 둔 것이 있어, 그것을 기반으로 구현하여 나한테 알맞게 사용할 수 있었다.

소셜 로그인 (네이티브 코드)
소셜 로그인과 이미지 저장 같은 기능을 개발하면서 네이티브 코드를 많이 작성해야 했다. 카카오 로그인과 애플 로그인을 구현해야 했는데, 두 가지 모두 네이티브 SDK만 지원했다. (플러터는 지원해 주던데... 바로 막심한 후회) 그래서 스위프트로 iOS 네이티브 코드를 작성해야 했고 심지어 나는 애플 로그인 구현이 처음이었다.
소셜 로그인 자체는 레퍼런스가 많기도 하고 전형적이기에 어렵지 않았다. 다만 애플 로그인 시, 네이티브 모듈에서 소셜 플랫폼 토큰을 얻고 공통 모듈로 보내는 부분에서 고민이 시작됐다. 나는 NSNotificationCenter라는 앱 어디로든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치트 키 같은 녀석을 사용했다. 내가 스위프트에 능했다면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급했기에 최선이었다...
이 외에도 이미지 저장과 같은 기능에서 네이티브 코드를 작성해야 했다. 이미지 저장은 여러 레퍼런스를 참고하고 UIImage를 사용해 해결했다.
웹뷰 (어쩌다 오픈소스에 기여하기)
웹뷰는 정말 문제였다. iOS를 얘기하기 전에 안드로이드의 컴포즈에도 웹뷰가 없었다. (Deprecated된 Accompanist WebView가 있긴 하다) 그래서 우선 오픈소스를 찾아봤다. 다행히 하나의 오픈소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사용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웹뷰에서 사진을 선택하고 업로드하는 기능이 있었는데, 해당 라이브러리의 안드로이드에서 이를 지원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 웹뷰에서 사진을 업로드하려면 onShowFileChooser 메서드를 직접 구현해 줘야 하는데 해당 부분이 구현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이 기능이 꼭 필요했기에 구현했고 마침 구현한 김에 해당 라이브러리에 PR을 작성했다.
아쉽게도 코드가 유연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보류됐고 해당 부분을 고치면 머지가 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봐도 유연하지 못했다. 너무 납득가서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시간이 부족했기에 머지는 포기하고 혼자만 사용했다. 그런데 몇 달 뒤 다른 사람이 내 코드를 기반으로 해당 부분을 수정하여 PR을 작성했고 머지됐다. 덕분에 내 PR 또한 머지되어 컨트리뷰터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컨트리뷰터가 되었다..!


부담감
혼자 개발하면서 업무와 책임을 나눌 사람이 없다 보니 부담감이 심했다. 오류 하나가 발생할 때마다 혹여 해결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나 때문에 우리 팀의 서비스가 나오지 못할까 우려됐다. 그럴 때마다 그냥 플러터로 할 걸 그랬나 후회하기도 했다. 다행히 모든 기능을 구현했고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혼자 개발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과 그 책임 또한 온전히 본인이 져야 한다는 단점이 있는 것 같다.
고객의 사랑
인스타그램 DM, 채널톡, 카카오톡 채널 관리자를 통해 고객 문의를 받았다. 플리마켓, 대학 축제와 같은 오프라인 마켓에 나가 직접 고객의 반응도 보았다. 차갑고 스트레스받는 말들도 있었지만, 우리 제품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표정과 반응을 잊을 수 없다.
한 열성 유저께서는 핏어팻의 제품이 너무 좋다고, 계속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DM으로 남겨주셨다. 건대 축제에서는 제품을 당신의 반려동물로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표정을 보여주셨다. 어쩌면 이런 말과 반응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던 것 같다.
회사 규칙 만들기
우리는 회사에 다녀본 적 없는 대학생(혹은 졸업생)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일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좋은지 알지 못했다. 결국 맨땅에 헤딩하며 알아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여섯 시간의 코어 타임(13~19시) 동안만 출근하면 됐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부족함을 느껴 풀타임으로 변경하여 10~19시 동안 일했다.
그러면서 연차와 근태 관리를 위한 규칙이 생겼다. 처음엔 연차를 달에 두 개씩으로 정했다. 하지만 몇 달 해보니 너무 많이 쉰다고 느껴 하나로 줄였다. 근태 관리로는 2회 지각 시 시차 1개 (연차 0.25개) 차감이라는 규칙을 정했다. 회사치고는 꽤 유연 편이었던 것 같다.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각자 자신의 일을 처리하느라 다른 팀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모두가 참여하는 데일리 스크럼을 진행했다. 자신의 그날 태스크를 이야기하고 도움, 논의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외에도 매주 한 번씩 전사 회의를 하며 중요한 사항을 논의하고 모두의 생각을 얼라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나는 회사에 들어가면 회의하느라 개발할 시간이 없다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
우리는 정말 회의를 길게 했다. 충돌하는 의견이 있을 때 모두가 설득될 때까지 회의를 진행했다. 특히 전사 회의는 제때 끝나는 법이 없었다. 회의가 길어지면 지치지만 그렇게 했던 이유는 생각을 통일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쭉을 하면서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모두의 생각을 얼라인 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스타트업은 해야할 일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서로 하는 일에 모두 관여할 수 없고 그 사람을 믿고 맡긴다. 그런데 이때 모두에게 팀이(회사가)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나아가는지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면 일은 중구난방으로 진행될 것이며 팀은 빠르게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업, 돈, 취업
우리는 모두 열정 페이로 일했다. 그러다 회사가 돈을 조금씩 벌기 시작하고 식대가 생겼다. 월급이 아닌 식대였지만 처음 받았을 때 정말 좋았다. 작은 돈이었고 회사가 어려워지면 언제 끊길지 몰랐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경제적 압박에서 구해주었다.
회삿돈 20만 원이 없어서 일에 사비를 써야 할 때도 있었다. 토스 이승건 대표의 영상을 여럿 보며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머리가 아닌 피부로 느끼는 것은 또 달랐다. 매일 살얼음판을 걷듯 어떻게 해야 회사가 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덕분에 퇴사하고 취준생이 되었을 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업은 해야 할 공부가 정해져 있다. 또 공부하고 하다 보면 늦더라도 언젠가는 취업할 수 있다. 매일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까, 당장 다음 주에 회사가 망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훨씬 쉬워 보이고 마음이 편했다.
물론 나는 이번 하반기에 취업하지 못했다. 취업도 못 했으면서 더 쉽다는 소리를 해? 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겐 그렇게 느껴진다. 종종 자괴감에 빠지고 자신감이 하락하지만 그래도 먹고 살 걱정은 아니니까.
퇴사 후 하반기, 취업 준비
퇴사를 하고 인생 첫 취준을 시작했고 많이 부족했다. 우선 코테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었다. 그래서 매일 코테 한 문제 풀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공부는 하면 확실히 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경험 삼아 봤던 여러 코테에서는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 그러나 매일 코테 풀기를 한 달, 두 달 반복하니 난도가 낮은 코테는 합격할 수 있었다. (늘 생각하지만 공부가 게임보다 쉬운 것 같다. 롤은 만날 천날 해도 똑같은데)
백준 실버5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골드4가 되었다. 물론 티어가 실력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노력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초반에는 티어 올리는 재미로 풀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실력에 비해 티어가 높아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얼마 전에도 실버2 DP 문제를 못 풀고 좌절했다.
나는 우선 면접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확실히 가고 싶은 기업이 아니더라도 지원했다. 합격 후 처우를 듣고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까.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서류가) 붙을 것으로 생각했던 기업들은 대부분 떨어지고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던 (가고싶었던) 기업들은 붙었다. 참 신기하다.
덕분에 몇 개의 기업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는데, 내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몇 달을 자소서 작성과 코테 준비에 쏟았더니 그새 안드로이드에 대해 공부했던 것들을 잊은 모양이다. 작년 우테코를 할 때였다면 신나게 이야기했을 주제들도 이제는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혼자 일하고 혼자 취업 준비를 하면서 토론 상대가 없었기에 그럴 수도 있다.
한 달의 침체기
나는 11월 말부터 12월까지 약 한 달간 침체기를 겪었다. 공부가 하기 싫어지고 하루를 어영부영 보내기 시작했다. 취업 준비라는 게 참 그렇다. 사람의 자존감을 깎아 먹고 의욕을 떨어트린다. 계속해서 탈락을 경험하다 보면 패배주의가 쌓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못난 사람이었나? 이렇게까지 부족한 게 많았나? 내가 이 정도도 안 되나? 여기에 더해 "누구는 어디에 붙었다더라"라는 소식까지 얹어주면 더 빠르게 자존감을 깎아내릴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취업 준비는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는 수많은 기업에 지원하지만, 모든 기업에 붙을 수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취준생은 합격보다 불합격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 불합격들 속에서 멘탈을 지켜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최근에 봤던 웹툰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의 일은 지나고 보면 간단해 보인다." 나는 지극히 공감한다. 아무리 힘들었던 기억이라도 지나고 돌아보면 훨씬 간단해 보인다. 재수도 군대도 창업도 정말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정도의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취업 준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2025년은?
블로그 챌린지와 여러 요소 덕분에 한 달간의 침체기를 끝내고 다시 열심히 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멈췄던 코테를 다시 풀고 있고 개발자 계정을 삭제하겠다는 구글의 협박 덕분에 안드로이드 개발도 다시 시작했다.
내년에는 부트캠프에서 취업 준비를 할 예정이다. 나는 환경이 중요한 사람이라 혼자서는 공부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또 부트캠프를 한다는 것이 약간 부끄러워 아직 주변에 떠들고 다니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며 취업 준비를 이어갈 예정이다. 더 좋은 환경이기에 올 하반기보다는 더 활기 넘치는 내년이 될 것 같다.
마무리
나는 원래 회고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공개적으로 쓰는 회고엔 내 모든 마음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엔 많은 진심을 담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회고에 익숙지 않아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쏟아냈다. 일 년짜리 일기라고 생각하고 적은 느낌이다. 사실 대부분 창업에 대한 이야기여서 창업 회고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언젠가 적어야지 생각했는데 블로그 챌린지 덕분에 적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년의 나는 또 어떤 회고를 쓸지 궁금하다. 쓰면서 한 게 없어서 부끄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좋은 소식 가득하길!
최근 동력을 잃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블로그 챌린지 모집 글을 보고 동력을 되찾기 위해 신청했다. 원래 주제는 2024년 회고지만, 창업 회고가 곁들여지면서 2023 하반기까지 포함되게 되었다.
창업 그리고 퇴사
올해 나에게 가장 큰 사건이지 않을까 싶다. 작년(2023년) 9월부터 쭉이라는 팀으로 창업을 시작했다. (이제는 회사가 되었지만)
종종 친구들이 왜 취업하지 않고 창업을 하냐고 물었다. (물론 취업이 하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원래 내 인생 계획은 2024년에 취업을 하고 30대 중반까지 돈과 경험을 쌓아 창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효재(쭉의 대표)를 만나면서 내가 10년 뒤로 계획했던 창업의 기회가 운 좋게 일찍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하더라도 미래에 창업하기 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효재에 대한 믿음이 컸다. 효재와 대화해보면, 꿈 같은 말들을 몇 년이 걸리든 결국 이뤄낼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fitapat(반려동물 커스텀 쇼핑몰)으로 시작했다. 유저가 AI의 도움을 받아 반려동물의 새로운 모습으로 커스텀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한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우리는 이것을 명왕성이라 불렀다) 모든 사람이 자기 브랜드가 있듯이 커스텀이 당연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커스텀 과정을 AI로 해결하고자 했다.


개인적으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고객들의 니즈가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러나 AI 기술의 한계로 수작업이 많이 들어가면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언젠가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서비스를 발전시켰지만,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올봄에서 여름 그사이 어딘가 당장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템을 시작했다. 우리가 커스텀 제품을 만들면서 얻은 노하우로 단체티, 웰컴키트 같은 커스텀 단체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점차 주문이 많아졌고 결국 우리의 메인 서비스였던 fitapat보다 매출이 높아졌다.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일시적인 아이템이 아닌 정식 서비스로 간주하고 브랜드부스트라고 명칭 했다. 점차 브랜드 부스트가 커졌고 리소스가 부족해졌다. 결국 fitapat을 그만두고 브랜드부스트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나에게만.
브랜드부스트는 웹 기반의 서비스였기에 앱이 필요 없었다. 지금껏 다양한 일을 해왔지만, 기본적으로 안드로이드 개발자였던 나는 새로운 주력 업무를 맡아야만 했다.
나는 제품을 만들어줄 공장들을 리스트업하고 방문하여 사장님들과 컨택하는 업무를 맡았다. 일례로 자수 부분을 개척하기 위해 자수 공장들을 돌며 자수 단가 책정의 원리와 사장님들의 페인 포인트를 조사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너스레를 떨며 대화하는 것은 나의 성향과 맞지 않았지만, 내 성격도 바꾸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이 일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는 아침 기상을 제외하면 즐거웠던 출근이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공장을 조사하는 동안 카톡방에서 친구들이 하는 개발 이야기를 보면 나만 도태되는 것 같아 두려웠다. 불안감과 함께 일을 부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한 나를 발견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개발자를 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안드로이드 개발이 아니어도 됐다. 어떤 개발이든 나는 개발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열정과 시간을 쏟았던 팀이고 어떻게든 성공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나와 팀을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올해 8월 26일이었다.
그 후로 쭉은 더욱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말 축하하고 앞으로도 잘 되길 바란다. 가끔 퇴사를 후회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나의 성취를 찾을 것이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내가 만든 제품으로 돈을 벌었고, 유저가 서비스를 좋아해주는 기쁨을 느꼈고, 투자를 유치하고 팀을 회사로 만들었다. 어디에서도 하기 어려운 경험이었고 앞으로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게 해주었다. 또 혹시 모른다. 언젠가 다른 경로로 팀과 다시 일하게 될지도?
쭉에서 기억에 남는 일들
동대문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어..
처음부터 모든 종류의 제품을 만들 수는 없었기에 옷으로 시작했다. 맨투맨과 후드티로 시작했고, 한 업체에게 공급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업체가 돌연 더 이상 해당 제품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린 당황하여 긴급회의를 열었고, 결과적으로 당일 밤 동대문을 돌며 조사하기로 했다.
자정을 넘긴 12시 30분에 동역사에서 만나 밤새 동대문 일대를 돌았다. 학생 취급을 받으며 문전박대당하기도 했지만 참 신선한 경험이었다. 모두가 잠드는 시간 동대문에서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동대문에서 직접 사입하는 것보다 새로운 업체를 찾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이 났다.
해당 에피소드는 아래에 더 상세히 적혀있다. 혹시 궁금하실까봐..
우당탕탕 스타트업 감성 모르면 나가라 | Disquiet*
라스베가스에서 CES2024로 인사드린 이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AI가 만드는 반려동물 굿즈, fitapat 운영하는 ZOOC 류희재입니다 :)fitapat은 내 반려동물로 굿즈를 디자인하는 경험에 AI를 접목해 만
disquiet.io
갑자기 멀티플랫폼
브랜드부스트가 생기 전에 회사의 재정이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열정 페이로 일하는 기간이 계속되고 매출이 좋지 못했다. 회사가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팀원이 떠나게 됐다. 네 명이었던 모바일 개발팀도 나 혼자가 되었다.
나는 iOS 개발을 해본 적이 없지만 둘 다 해내야 했다. 그래서 멀티플랫폼을 선택했고 플러터와 컴포즈 멀티플랫폼 (이하 CMP) 중 고민하다 CMP를 선택했다. 당시 팀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속도였기에 내가 가장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나는 플러터와 다트 모두 경험이 없었지만, 대신 플러터는 안정되고 레퍼런스가 많았다. 반면 CMP는 나에게 익숙한 코틀린을 사용하는 대신 불안정하고 레퍼런스도 거의 없었다. 당시엔 그래도 코틀린을 사용하는 게 낫겠다 싶어 CMP를 선택했다.
두 달 동안 기존 앱을 CMP로 마이그레이션 했다. 앱이 튼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기능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개발하면서 여러 번 후회했다. 지원되는 공식 API가 적어 오픈 소스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또한 불친절한 오류 메시지와 함께 수많은 오류가 발생했고 구글링하면 스택오버플로우 대신 유트랙이 나왔다. 그마저도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iOS와 컴포즈 모두 처음이었기 때문에 공부할 것도 많았다. 돌아보면 특히 내비게이션, 소셜 로그인, 웹뷰가 기억에 남는다.
내비게이션
컴포즈 내비게이션은 CMP에서 Back Handler 재정의, 딥링크 등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다. CMP 공식 문서에서도 서드 파티 라이브러리를 제안하는데, 유명한 것으로 네 가지가 있다. Voyager, Decompose, Precompose, Appyx가 있었다. (지금 들어가 보니 Circuit이 추가되었다)
나는 최대한 컴포즈 내비게이션과 비슷한 것을 사용하고 싶었다. 언젠가 컴포즈 냄비게이션이 발전하면 다시 넘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유사한 Precompose를 선택했다. 하지만 사용 중에 여러 오류를 겪으며 Voyager로 변경했다. Precompose에 비해 Voyager의 개발팀 인원이 더 많아서 그런지 더욱 안정됐다고 느꼈다. (대신 컴포즈 내비게이션과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내비게이션에서 특히 어려웠던 것은 iOS의 스와이프 백 제스처였다. 멀티 플랫폼이기에 플랫폼을 구분해서 뒤로가기를 다르게 구현해 줘야 했다. iOS 개발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이 부분이 꽤 곤란했다. 다행히 라이브러리 PR에 누군가 구현해 둔 것이 있어, 그것을 기반으로 구현하여 나한테 알맞게 사용할 수 있었다.

소셜 로그인 (네이티브 코드)
소셜 로그인과 이미지 저장 같은 기능을 개발하면서 네이티브 코드를 많이 작성해야 했다. 카카오 로그인과 애플 로그인을 구현해야 했는데, 두 가지 모두 네이티브 SDK만 지원했다. (플러터는 지원해 주던데... 바로 막심한 후회) 그래서 스위프트로 iOS 네이티브 코드를 작성해야 했고 심지어 나는 애플 로그인 구현이 처음이었다.
소셜 로그인 자체는 레퍼런스가 많기도 하고 전형적이기에 어렵지 않았다. 다만 애플 로그인 시, 네이티브 모듈에서 소셜 플랫폼 토큰을 얻고 공통 모듈로 보내는 부분에서 고민이 시작됐다. 나는 NSNotificationCenter라는 앱 어디로든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치트 키 같은 녀석을 사용했다. 내가 스위프트에 능했다면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급했기에 최선이었다...
이 외에도 이미지 저장과 같은 기능에서 네이티브 코드를 작성해야 했다. 이미지 저장은 여러 레퍼런스를 참고하고 UIImage를 사용해 해결했다.
웹뷰 (어쩌다 오픈소스에 기여하기)
웹뷰는 정말 문제였다. iOS를 얘기하기 전에 안드로이드의 컴포즈에도 웹뷰가 없었다. (Deprecated된 Accompanist WebView가 있긴 하다) 그래서 우선 오픈소스를 찾아봤다. 다행히 하나의 오픈소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사용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웹뷰에서 사진을 선택하고 업로드하는 기능이 있었는데, 해당 라이브러리의 안드로이드에서 이를 지원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 웹뷰에서 사진을 업로드하려면 onShowFileChooser 메서드를 직접 구현해 줘야 하는데 해당 부분이 구현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이 기능이 꼭 필요했기에 구현했고 마침 구현한 김에 해당 라이브러리에 PR을 작성했다.
아쉽게도 코드가 유연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보류됐고 해당 부분을 고치면 머지가 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봐도 유연하지 못했다. 너무 납득가서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시간이 부족했기에 머지는 포기하고 혼자만 사용했다. 그런데 몇 달 뒤 다른 사람이 내 코드를 기반으로 해당 부분을 수정하여 PR을 작성했고 머지됐다. 덕분에 내 PR 또한 머지되어 컨트리뷰터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컨트리뷰터가 되었다..!


부담감
혼자 개발하면서 업무와 책임을 나눌 사람이 없다 보니 부담감이 심했다. 오류 하나가 발생할 때마다 혹여 해결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나 때문에 우리 팀의 서비스가 나오지 못할까 우려됐다. 그럴 때마다 그냥 플러터로 할 걸 그랬나 후회하기도 했다. 다행히 모든 기능을 구현했고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혼자 개발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과 그 책임 또한 온전히 본인이 져야 한다는 단점이 있는 것 같다.
고객의 사랑
인스타그램 DM, 채널톡, 카카오톡 채널 관리자를 통해 고객 문의를 받았다. 플리마켓, 대학 축제와 같은 오프라인 마켓에 나가 직접 고객의 반응도 보았다. 차갑고 스트레스받는 말들도 있었지만, 우리 제품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표정과 반응을 잊을 수 없다.
한 열성 유저께서는 핏어팻의 제품이 너무 좋다고, 계속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DM으로 남겨주셨다. 건대 축제에서는 제품을 당신의 반려동물로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표정을 보여주셨다. 어쩌면 이런 말과 반응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던 것 같다.
회사 규칙 만들기
우리는 회사에 다녀본 적 없는 대학생(혹은 졸업생)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일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좋은지 알지 못했다. 결국 맨땅에 헤딩하며 알아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여섯 시간의 코어 타임(13~19시) 동안만 출근하면 됐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부족함을 느껴 풀타임으로 변경하여 10~19시 동안 일했다.
그러면서 연차와 근태 관리를 위한 규칙이 생겼다. 처음엔 연차를 달에 두 개씩으로 정했다. 하지만 몇 달 해보니 너무 많이 쉰다고 느껴 하나로 줄였다. 근태 관리로는 2회 지각 시 시차 1개 (연차 0.25개) 차감이라는 규칙을 정했다. 회사치고는 꽤 유연 편이었던 것 같다.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각자 자신의 일을 처리하느라 다른 팀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모두가 참여하는 데일리 스크럼을 진행했다. 자신의 그날 태스크를 이야기하고 도움, 논의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외에도 매주 한 번씩 전사 회의를 하며 중요한 사항을 논의하고 모두의 생각을 얼라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나는 회사에 들어가면 회의하느라 개발할 시간이 없다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
우리는 정말 회의를 길게 했다. 충돌하는 의견이 있을 때 모두가 설득될 때까지 회의를 진행했다. 특히 전사 회의는 제때 끝나는 법이 없었다. 회의가 길어지면 지치지만 그렇게 했던 이유는 생각을 통일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쭉을 하면서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모두의 생각을 얼라인 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스타트업은 해야할 일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서로 하는 일에 모두 관여할 수 없고 그 사람을 믿고 맡긴다. 그런데 이때 모두에게 팀이(회사가)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나아가는지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면 일은 중구난방으로 진행될 것이며 팀은 빠르게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업, 돈, 취업
우리는 모두 열정 페이로 일했다. 그러다 회사가 돈을 조금씩 벌기 시작하고 식대가 생겼다. 월급이 아닌 식대였지만 처음 받았을 때 정말 좋았다. 작은 돈이었고 회사가 어려워지면 언제 끊길지 몰랐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경제적 압박에서 구해주었다.
회삿돈 20만 원이 없어서 일에 사비를 써야 할 때도 있었다. 토스 이승건 대표의 영상을 여럿 보며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머리가 아닌 피부로 느끼는 것은 또 달랐다. 매일 살얼음판을 걷듯 어떻게 해야 회사가 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덕분에 퇴사하고 취준생이 되었을 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업은 해야 할 공부가 정해져 있다. 또 공부하고 하다 보면 늦더라도 언젠가는 취업할 수 있다. 매일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까, 당장 다음 주에 회사가 망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훨씬 쉬워 보이고 마음이 편했다.
물론 나는 이번 하반기에 취업하지 못했다. 취업도 못 했으면서 더 쉽다는 소리를 해? 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겐 그렇게 느껴진다. 종종 자괴감에 빠지고 자신감이 하락하지만 그래도 먹고 살 걱정은 아니니까.
퇴사 후 하반기, 취업 준비
퇴사를 하고 인생 첫 취준을 시작했고 많이 부족했다. 우선 코테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었다. 그래서 매일 코테 한 문제 풀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공부는 하면 확실히 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경험 삼아 봤던 여러 코테에서는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 그러나 매일 코테 풀기를 한 달, 두 달 반복하니 난도가 낮은 코테는 합격할 수 있었다. (늘 생각하지만 공부가 게임보다 쉬운 것 같다. 롤은 만날 천날 해도 똑같은데)
백준 실버5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골드4가 되었다. 물론 티어가 실력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노력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초반에는 티어 올리는 재미로 풀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실력에 비해 티어가 높아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얼마 전에도 실버2 DP 문제를 못 풀고 좌절했다.
나는 우선 면접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확실히 가고 싶은 기업이 아니더라도 지원했다. 합격 후 처우를 듣고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까.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서류가) 붙을 것으로 생각했던 기업들은 대부분 떨어지고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던 (가고싶었던) 기업들은 붙었다. 참 신기하다.
덕분에 몇 개의 기업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는데, 내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몇 달을 자소서 작성과 코테 준비에 쏟았더니 그새 안드로이드에 대해 공부했던 것들을 잊은 모양이다. 작년 우테코를 할 때였다면 신나게 이야기했을 주제들도 이제는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혼자 일하고 혼자 취업 준비를 하면서 토론 상대가 없었기에 그럴 수도 있다.
한 달의 침체기
나는 11월 말부터 12월까지 약 한 달간 침체기를 겪었다. 공부가 하기 싫어지고 하루를 어영부영 보내기 시작했다. 취업 준비라는 게 참 그렇다. 사람의 자존감을 깎아 먹고 의욕을 떨어트린다. 계속해서 탈락을 경험하다 보면 패배주의가 쌓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못난 사람이었나? 이렇게까지 부족한 게 많았나? 내가 이 정도도 안 되나? 여기에 더해 "누구는 어디에 붙었다더라"라는 소식까지 얹어주면 더 빠르게 자존감을 깎아내릴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취업 준비는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는 수많은 기업에 지원하지만, 모든 기업에 붙을 수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취준생은 합격보다 불합격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 불합격들 속에서 멘탈을 지켜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최근에 봤던 웹툰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의 일은 지나고 보면 간단해 보인다." 나는 지극히 공감한다. 아무리 힘들었던 기억이라도 지나고 돌아보면 훨씬 간단해 보인다. 재수도 군대도 창업도 정말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정도의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취업 준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2025년은?
블로그 챌린지와 여러 요소 덕분에 한 달간의 침체기를 끝내고 다시 열심히 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멈췄던 코테를 다시 풀고 있고 개발자 계정을 삭제하겠다는 구글의 협박 덕분에 안드로이드 개발도 다시 시작했다.
내년에는 부트캠프에서 취업 준비를 할 예정이다. 나는 환경이 중요한 사람이라 혼자서는 공부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또 부트캠프를 한다는 것이 약간 부끄러워 아직 주변에 떠들고 다니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며 취업 준비를 이어갈 예정이다. 더 좋은 환경이기에 올 하반기보다는 더 활기 넘치는 내년이 될 것 같다.
마무리
나는 원래 회고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공개적으로 쓰는 회고엔 내 모든 마음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엔 많은 진심을 담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회고에 익숙지 않아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쏟아냈다. 일 년짜리 일기라고 생각하고 적은 느낌이다. 사실 대부분 창업에 대한 이야기여서 창업 회고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언젠가 적어야지 생각했는데 블로그 챌린지 덕분에 적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년의 나는 또 어떤 회고를 쓸지 궁금하다. 쓰면서 한 게 없어서 부끄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좋은 소식 가득하길!